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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안에서 아이들을 아파트 단지별로 나눠 앉히는 학교가 정말 존재할까요? 저는 처음 이 영화 소재를 접했을 때 "설마 이 정도까지야" 싶었는데, 막상 자료를 찾아보니 현실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심심치 않게 보도되더군요. '마지막 숙제'는 바로 그런 민낯을 드러내는 영화입니다. 이정철 감독이 연출하고 엄태웅, 박상면, 전수경, 최이나, 윤현숙이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경남의 한 사립초등학교를 배경으로, 아파트 거주지에 따라 학생들이 차별받는 현실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저는 학창 시절 비슷한 분위기를 경험했던 터라,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들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계층 갈등이 교실로 들어올 때
영화는 기간제 교사인 김영남이 새로운 반을 맡으면서 시작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학부모 조직인 자모회(PTA, Parent-Teacher Association)가 학교 운영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구조입니다. 자모회란 학부모와 교사가 학생 교육을 위해 협력하는 조직을 의미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오히려 특정 계층의 학부모들이 학교를 사유화하는 도구로 변질되어 있습니다(출처: 교육부). 자모회장은 영남 선생님에게 "불안한 자리"에 있다며 압박을 가하고, 학교의 "운영 방침"을 따를 것을 요구합니다.
여기서 영남 선생님이 맞서는 지점이 인상적입니다. 그는 학교 자체 방침보다 교육부의 공식 운영 지침이 우선이라고 맞받아칩니다. 저도 학교를 다니면서 느꼈던 건데, 어떤 학교는 '우리 학교만의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이상한 관습을 정당화하는 경우가 있더군요. 그게 학생 개개인의 권리보다 우선시 될 때 문제가 시작됩니다.
교실 안에서는 이미 아이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펜스(Fence, 경계선)가 그어져 있었습니다. 민영 아파트 학생들과 임대 아파트 학생들이 섞이지 않고, 자리 배치조차 거주지별로 나뉘어 있는 상황입니다. 주인공 준수는 임대 아파트에 사는 학생으로, 알코올 의존증이 있는 아버지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라는 무거운 가정사를 안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계층을 의식하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교육 철학과 창의성의 충돌
영남 선생님은 반의 임시 회장을 뽑기 위해 색다른 방법을 제안합니다. 바로 "가장 잘 날아갈 수 있는 비행 물체 만들기 대회"입니다. 이 대회에서 준수가 날개 없는 로켓 모양의 UFO를 만들어 유일하게 바구니에 착지시키자, 민영 아파트 학생들은 "반칙"이라며 강하게 반발합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건 창의성(Creativity)에 대한 인식 차이입니다. 창의성이란 기존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준수는 "비행 물체가 꼭 날개를 가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로켓이라는 대안을 제시했지만, 다른 아이들은 이를 규칙 위반으로 받아들입니다. 영남 선생님은 준수의 접근을 칭찬하며 개인의 장점과 창의성을 격려하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창일이라는 학생은 "임대 아파트 학생들에게 칭찬받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 장면이 제게는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칭찬이나 인정이라는 게 원래 개인의 노력이나 성취에 대한 것인데, 그 사람이 어디 사는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는 인식이 이미 아이들 안에 깊숙이 박혀 있는 겁니다. 저도 학창 시절 비슷한 걸 본 적이 있는데, 형편이 어려운 친구가 좋은 아이디어를 내도 "그래 봤자 별로"라는 분위기가 은근히 흐를 때가 있더군요.
영남 선생님의 교육 철학은 그의 과거 경험에서 비롯됩니다. 그는 대입 학원 원장 시절, 학생들을 오로지 수익의 대상으로만 봤던 자신의 오만함을 뒤늦게 깨닫고 초등학교 교사직을 자발적으로 선택했습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자기가 어떤 색깔의 사람인지 생각해 보라"라고 가르치며, 각자의 색깔을 간직해야 세상이 아름다운 무지개색이 된다고 강조합니다. 이런 메시지는 사실 교육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다양성 존중(Diversity and Inclusion) 원칙과도 맞닿아 있습니다(출처: 한국교육개발원). 각 학생의 고유한 특성을 인정하고 차별 없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라는 뜻입니다.
성장 드라마로서의 가능성과 한계
영화는 학부모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긴장감을 높입니다. 창일이 엄마는 영남 선생님의 과거를 파헤쳐 담임 자격 정지 처분까지 끌어냅니다. 설상가상으로 창일과 준수 사이에 몸싸움이 발생하고, 준수가 다치자 학부모들 사이에서 "임대들이 먼저 놀렸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하나 있습니다. 겉으로는 무관심해 보였던 준수의 아버지가 사실은 누구보다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장면은 성장 드라마(Coming-of-Age Drama)의 전형적인 구조를 따릅니다. 성장 드라마란 주인공이 갈등과 시련을 겪으며 내적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을 그린 장르를 의미합니다. 준수는 아버지의 진심을 알게 되고, 창일은 영남 선생님에게 마음의 문을 열며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펜스를 허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저는 이 질문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층 갈등이나 차별은 결국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구조입니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너는 어느 아파트 사니까 어떤 취급을 받아야 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학교라는 공간에서, 학부모라는 이름으로 그 구조가 재생산되는 겁니다. 저도 학창 시절 비슷한 걸 느꼈는데, 말 잘하고 배경이 탄탄한 아이들이 더 쉽게 인정받는 걸 보면서 "능력보다 이미지가 먼저구나" 싶었습니다.
다만 이런 메시지 중심 영화는 자칫 교훈이 너무 앞서면 인물의 생생함이 약해질 위험이 있습니다. 영남 선생님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완벽한 영웅처럼 그려지면, 관객 입장에서는 오히려 거리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 주제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인물과 관계 속에 녹여내느냐입니다. 엄태웅과 윤현숙 같은 배우들의 연기력, 아역 배우들의 성숙한 표현력이 이 지점을 얼마나 잘 살려낼지가 관건일 것 같습니다.
결국 '마지막 숙제'는 단순한 성장 드라마를 넘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교실이라는 작은 공간 안에 압축해서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계층 갈등은 성인의 세계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가장 먼저 배우고 재현하는 장소가 학교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꽤 무겁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고 있는가?"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적어도 그 질문 앞에서 한 번쯤 멈춰 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선생님 한 명이 분위기를 바꾸는 걸 실제로 본 적이 있는 사람으로서, 교육이란 결국 누군가를 차별 없이 바라봐 주는 시선에서 시작된다는 메시지에 공감합니다.